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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鶴亭記略

 

惟我黃鶴亭 本在 慶熙宮會祥殿後之一

小亭이러니 英廟在位五十三年 常御是宮하시고

萬機之餘 留意射藝하사 乘暇親射하시고

觀近臣射術之處而 聖性恭儉하사 不揭額而

只稱射亭焉이러니 正廟 移御 昌德宮後

追慕 英廟之遺志하사 種種率臣試射於斯亭

하시고 高宗皇帝 亦好斯藝하사 在御 慶運

(今德壽宮) 於宮後架雲橋하고 頻幸此

하사 浩然臨弓하시니 陪射諸臣 仰瞻 陛下

以黃衣挽弓 彷佛鶴之舒翼故 仰稟以黃

鶴命亭之意則 陸下 稱善하사 仍名者也

其後國運 唯傾하야 竟當淪亡之悲하니 島夷

欲毁撤 慶熙宮하고 建設學校하니 此亭 亦陷

於撤廢之楬 其時 高宗 仄聞하시고 特召前侍

射臣成文永하사 下敎曰 朕聞黃鶴亭

將廢云하니 眞愛惜者也 此亭 非但

朕之射場也 列聖朝所常 親射處也 朕不忍

放置 汝其移建于社稷壇登科亭址하라

亭亦 列聖朝 親祭 社稷壇後 試武臣

賜第處則在舊移新 不亦兩美乎아하시고 又 賜

內帑金若干하시니 文永 惶恐受命而退하고 是歲

季冬 高宗 昇遐하시니 又四年(1922) 僅備

營資하야 舍淚移健하고 奉安 高宗 親射之

弓矢于堂內矣러니 又當六二五動亂하야 亭舍慘

害莫甚이나然 高宗所御之弓矢 尙在矣

而今 射友同人 重修射臺하고 擴張武劫하며

增築庭園하니 渙然一新 勝於舊亭之規矣

蓋射御 周禮之次於禮樂而先於書數者也

歷代所尙 不必贅言이라 且京內射亭

當十數而此亭 登科古址 列聖朝 御射之處 非徒同好者之所固守者也 實乃一國之所重實云爾

 

西紀 1969 3

 

東萊 鄭寅昶 謹敍

新安 朱錫天 謹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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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鶴亭記略

황학정기략

惟我黃鶴亭은 本在 慶熙宮會祥殿後之一小亭이러니

우리 황학정은 본래 경희궁 회상전 뒤에 있는 작은 정자였으니

英廟在位五十三年에 常御是宮하시고

영조 재위 53년에 항상 이 궁(경희궁)에 머무르시고

萬機之餘에 留意射藝하사 乘暇親射하시고

국사를 돌보는 여가에 활쏘기에 뜻을 두시어 여가가 있으면 친히 활을 쏘시고

繼觀近臣射術之處而 聖性恭儉하사 不揭額而 只稱射亭焉이러니

이어서 가까운 신하들이 활쏘기를 보시니 임금의 성품이 공손하고 검소하셔서 현판을 걸지 않고 단지 '사정'이라고 불렀다

正廟 移御 昌德宮後에 追慕 英廟之遺志하사

정조 때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시고 영조의 뜻을 추모하여

種種率臣試射於斯亭하시고

때때로 신하들을 거느리고 이 정자에서 활을 쏘시었으며

高宗皇帝ㅣ 亦好斯藝하사 在御 慶運宮(今德壽宮)時에 於宮後架雲橋하고 頻幸此亭하사

고종황제 역시 이 예(활쏘기)를 좋아하시어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에 머무르실 때 궁궐 뒤에 구름다리를 놓아 이 정장에 자주 들르셨으며

浩然臨弓하시니 陪射諸臣이 仰瞻 陛下ㅣ以黃衣挽弓이 彷佛鶴之舒翼故로 仰稟以黃鶴命亭之意則

호탕하게 활을 잡으시니 따르던 신하들이 우러보니 폐하께서 노란옷(황제의 복식)을 입고 활을 당기는 모습이 학이 날개를 편 모습과 흡사하기에 황학정의 이름을 올린 즉

陸(陛의 잘못)下ㅣ 稱善하사 仍名者也라

폐하께서 좋은 이름이라하시어 이에 이름이 되었다.

其後國運이 唯傾하야 竟當淪亡之悲하니

그 후 국운이 더욱 기울어 멸망의 비극에 이르게 되니

島夷ㅣ欲毁撤 慶熙宮하고 建設學校하니 此亭이 亦陷於撤廢之楬라

섬나라 오랑캐들이 경희궁을 훼철하고 학교를 세우니 이 정자 역시 철폐될 지경에 이르렀다.

其時에 高宗이 仄聞하시고 特召前侍射臣成文永하사 下敎曰 朕聞黃鶴亭이 將廢云하니 眞愛惜者也라

이때 고종이 이를 들으시고 전에 활쏘기를 모셨던 신하 성문영을 특별히 부르셔서 하교하여 이르기를 짐이 들으니 황학정이 장차 폐지된다고 하니 진실로 애석한 일이다.

此亭은 非但朕之射場也오 列聖朝所常親射處也니 朕不忍放置라

이 정자는 단지 짐의 활쏘기 터가 아니고 여러 선대 임금의 활쏘기터이니 짐이 방치할 수 없다.

汝其移建于社稷壇登科亭址하라

너는 이를 사직단 등과정터에 옮겨라

是亭亦 列聖朝ㅣ 親祭 社稷壇後에 試武臣賜第處則在舊移新이 不亦兩美乎아하시고

이 정자 역시 열성조의 사직단 뒤에 친히 제사를 지내고 무신들에게 품계를 주던 곳이니 이 또한 아름답지 아니한가

又 賜內帑金若干하시니 文永이 惶恐受命而退하고

또 내탕금을 약간 하사하시니 문영이 황공히 명을 받고 물러났다.

是歲 季冬에 高宗이 昇遐하시니 又四年(1922)에 僅備營資하야 舍淚移健하고

이해 음력 12월 고종이 승하하시고 4년뒤 1922년 자금을 마련하여 건물을 헐어 옮기고

奉安 高宗 親射之弓矢于堂內矣러니

고종이 친히 쏜 활과 화살을 모셨다.

又當六二五動亂하야 亭舍慘害莫甚이나 然 高宗所御之弓矢 尙在矣라

또 6.25 동란을 당하여 정자 건물은 피해가 막심하였으나 고종의 활과 화살은 멀쩡하였다.

而今에 射友同人이 重修射臺하고 擴張武劫하며 增築庭園하니

지금에 이르러 활쏘기 동인들이 사대를 새로 고치고 확장하여 정원을 증축하니

渙然一新이 勝於舊亭之規矣라

환연히 새롭게 되어 예전 정자의 규모보다 낫게 되었다.

蓋射御는 周禮之次於禮樂而先於書數者也

모릇 활쏘기는 주례에서 예악 다음이며 글쓰기와 셈하기보다 앞선 것으로

歷代所尙은 不必贅言이라 且京內射亭이 不當十數而

대대로 숭상한 것은 말할 필요로 덥으며 또 서울 안에 사정이 열 몇 개에 그치니

此亭은 登科古址오 列聖朝 御射之處 니 非徒同好者之所固守者也오 實乃一國之所重實云爾

이 정자는 무과 등제의 옛터이고 여러 임금님의 활터이니 동호인들만의 것이 아니라 진실로 한 나라의 소중한 것이다.

西紀 1969年 3月

東萊 鄭寅昶 謹敍

新安 朱錫天 謹書